공지사항
충무공 이순신 장군 사제사 賜祭祀( 단제사壇祭祀, 국가제향) 봉행 2012-10-16

2012년 10월11일(목요일) 오전 11시, 경남 남해군 고현면 차면리 관음포이충무공전몰유허지(이락사)에서 문화체육부장관 최광식, (사)임진란정신문화선양회 이종남 회장, 청주 충렬사 보존회장 병상진, 경주이씨백사공파종중회 회장 이상욱, 풍산류씨 서애파 문중, 덕수이씨 대종회 회장 이민영, 덕수이씨 충무공파 종회 이종천 회장, 덕수이씨 덕연부원군파 이종설 회장, 덕수이씨 정정공 푸암공 이종민 회장, 풍산류씨서애문회, 안동 도산 번남 이동익, 해평윤씨 오음윤두수공 사제사집행위원장 윤금영, 충렬공 송상현 선생 종중 등 화환이 진열된 가운데, 정현태 남해군수, 남해군의회 의장 한호식, 남해군의회 부의장 이주홍, 백운갑 경남도청 문화재정책담당사무관, 남해문화원장 하미자, 류창해 서애 차종손, 제봉 공경명선생 기념사업회, 헌민공 윤탁연 종회, 단양우씨 판서공 종중, 동양문헌학협회, 남해충렬사 사무국장 조정웅, 경남도의회의원 이재열, 충렬공 송상현 선생 종회 송정화 이사, 해평오음공 종회, 경주이씨백사공파 종회, 영천 호수선생정세아 문중 회장 정기용, 영일정씨호수공파 정연군, 풍암공 문위세선생종중 문상배, 문장호, 문덕수이씨 대종회 이범 상근 부회장, 이재응 총무이사, 이종민 정정공 종회장, 이종설 덕연부원군파 회장, 덕수이씨 판관공파 이호영회장, 덕수이씨 부산지부 이종식 외, 금산칠백회 최은규 회장, 전라좌의병 사무국장 임행모, 순천시 이충무공 유적보존회 임동규, 박유성 차면리 이장, 그 옆동네 박동귀 방원리 이장 등 많은 내외빈과 단체들이 참석해 충무공 이순신 장군 사제사(賜祭祀 : 단제사 壇祭祀)를 봉행했다.봉행한 연유는?

 

하루 전 날 내려간 노량 해협은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아득한 400여 년전엔 국가의 운명이 좌우되던 전쟁이 벌어졌나 싶게 그 다음 날 아침 노량해협은 멋진 수묵화를 그리고 있었다. 

 

지금은 수묵화 같은 풍경이지만 1598년 11월은 고니시 유니나까를 구하기 위해 경남 사천(泗川)에 있던 시마쓰 요시히로[島津義弘]와 남해의 소시라노부[宗調信]의 전선 500여 척이 저 산들을 돌아 앞에 보이는 바다를 지나 노량 앞바다에 집결시켰다.

 

11월 18일 밤 200여척의 조·명 연합수군을 거느린 이순신 장군은 “이 원수만 무찌른다면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此讎若除死則無憾).”고 하늘에 빌고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19일 새벽, 싸움은 막바지에 이르고 이순신과 진린은 서로 위급함을 구하면서 전투를 독려하자 왜의 수군 선박 200여척이 불에 타거나 부서지고 패잔선 50여척이 겨우 달아났다.이순신 장군은 관음포(觀音浦)로 도주하는 마지막 왜군을 추격하던 중 총환을 맞고 쓰러지면서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戰方急愼勿言我死).”는 세계사상 길이 빛나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이에 처음 모신 곳이 이곳이다. 하여 나라에서는 매 60년마다 치제하여 왔다. 올해 7주갑(420년)을 맞아 이곳에서 봉행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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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례관과 청사초롱을 앞세우고 치제문을 받쳐둘고 뒤에 사제관이 알자의 안내를 받아 걸어오고 있다.

 

충무공의 후예인 해군 의장대가 도열한 가운데

 

지휘관의 검례와 동시 충무공에 대하여 받들어 총의 구호속에

 

제단을 향해 걸어 오고 있다.

 

사제관과 집례관들이

 

내외빈이 도렬하자

 

류한성 수석부회장이 간단히 내외빈을 소개하고

 

집례관이 바로 집전했다.

 

황촉을 밝히고

 

정부가 내린 제물을 개봉하고

 

사제관은 알자의 인도로

 

전폐례(奠幣禮)를 행하기 위해

 

관수위세수하고

 

사준은 멱을 들고 울창주를 따르고집사는 작에 제주를 받아

 

치제관이 무릎 꿇고

 

울창주를 따르고

 

면포를 바치고

 

치제관이 잔을 올리자

우집사가 받아 정성을 다해 삼족배를 제단 위에 올리고 있다.

 

삼배를 올리고 나서

 

이종천 충무공파 종회 회장이 독축했다.

 

치제문을 창(낭송)하는 동안 고개숙여 기리고 있다.

 

維壬辰亂七周甲歲次西紀二千十二年壬辰十月十一日大韓民國大統領李明博을대신하여社團法人壬辰亂精神文化宣揚會會長李種南은故贈領議政德豊府院君忠武公李先生의靈位前에恭敬히國家祭享을올리나이다아울러純祖임금의敎書에서特命하신바대로倭賊과싸우다가함께殉國하신有名無命의수많은水軍烈士의靈前에도國家祭享을올리나이다先生의國王賜祭는顯宗六年乙巳五月一日禮官을보내致祭했으며肅宗四十三年丁酉三月十二日禮曹郎官을보내墓前致祭하였고英祖四十八年壬辰二月五日禮官을보내致祭하였고正祖十九年乙卯十二月五日에는國王이親히祭文을지어서統制使李得濟로하여금統營忠烈祠에서致祭하게하였고純祖二年己酉正月七日에는地方官을보내어墓前致祭하였습니다壬辰亂九功臣을위한國王賜祭는壬辰亂후四周甲인純祖三十二年壬辰二月六日에下敎하사壬辰國難에목숨을바쳐殉國한분으로忠誠과勞苦가우뚝드러난아홉분중忠烈公宋象賢文烈公趙憲忠烈公高敬命忠武公李舜臣은殉國한곳에設壇하여本道의秩高守令이殉國將兵아울러致祭하고文忠公李恒福文靖公尹斗壽忠翼公鄭崑壽文忠公柳成龍忠壯公權慄의家廟에는承旨를보내어致祭하게하신바五周甲인高宗三十三年壬辰에九功臣致祭가있었고六周甲인一九五二年壬辰에는北傀의南侵動亂중으로경황이없었으나다만五月二十四日에前代의國王賜祭를계승하여國家賜祭로서大韓民國初代大統領李承晩을대신하여慶尙北道知事로하여금西厓柳先生의祠堂에祭享함에그쳤습니다今此七周甲壬辰年에는大韓民國政府가주최하고社團法人壬辰亂精神文化宣揚會가九功臣祭享事務를主管하여致祭하게되었사온데五周甲壬辰年致祭후에는國運이衰하고天道가無心하여隆熙四年七月에다시철천지원수인倭賊의侵略으로나라를잃는未曾有의天厄을겪고一九四五年八月光復을맞아오늘에이르렀슴은壬辰倭亂殉國英靈의忠節을계승하지못한罪過임을삼가告하옵고謝罪하오며망극한심정가눌길없습니다돌이켜보오니우리나라成宗中宗明宗代에는하늘이福을내리사名人과濟濟多士가연이어世上에나오심에先生은담량이남다르고志操가굳고法度있는學者로서의몸가짐을지니시며지극하신孝誠과友愛를天品으로타고나셨고居家行誼가매우돈돋하시며平常에서는經史詞章兵家에통달하신文士이셨으니文武를兼備하셨습니다官職에臨하여서는公先私後로一貫하시며옳은일은좌고우면하는일없이끝까지관철하시니윗사람의시기질투에의한死生의고비가적지않았습니다修養에근본이있었으므로혹시罪없이獄에갇혀도마음이동요하지않으시며지혜와계책을내시면한가지도빠짐없고敵情을헤아리기가귀신과같았습니다그리하여壬辰年前年에全羅左水使로부임하여서는倭賊을경계하여날마다兵器를수리하고軍士를감추고大砲를설치하며거북선을만들어對備하는先見之明이있으셨습니다先生은壬辰倭亂을당하여는처음에玉浦대첩에이어露梁대첩으로倭船四十三척을격파하였고唐浦대첩으로三十여척을깨트리고湖南을向하려는倭賊을閑山島에서맞아七十여척을격파하고一萬여명을죽이는대첩을거두셨고釜山을공격하여一百여척을불사르는등대첩이있은후비로소統營에三道水軍統制營을두어先生이初代統制使가되시어慶尙道全羅道忠淸道를통제하는大任을맡으셨습니다丁酉再亂이있게되나先生은모함으로투옥되시니체찰사李元翼公과판중추부사인鄭琢公의강력한建議로大夫人喪中임에도白衣從軍의명을받으시고다시三道水軍統制使로부임하시자마자鳴梁에서倭船三十一척을처부수는대첩을올리고順天於蘭島의대첩에이어碧波亭에서大勝을거두어그위엄과명성이더욱떨치시고다시露梁에서倭船二百여척을불지르는대첩을세우고南海로추격하던중敵의총탄을맞아운명하시니享年五十四세였습니다先生은倭亂중二十三戰二十三勝하셨는데必死則生必生則死의말씀誓海魚龍動하고盟山草木知라는말씀과같은決意로전투에임하심으로써全勝을이끌으시고若無湖南이면是無國家라말씀하시어湖南과湖西를保全할수있게하여百尺竿頭의나라를救해주셨으니아아先生은하늘이내리신聖雄이시며文翰家統을잊지않으시고武科응시하신것은바로하늘이豫見하여점지하신것이아니고무엇이오니까宣撫功臣一等의영예와忠武의賜號와德豊府院君의封君과領議政의追贈으로國家는더없는報答을하였고오늘날까지先生은聖雄으로서後生들의가슴속에살아계시며護國精神의原動力이십니다아울러先生의휘하에서싸워殉國하신名將들과이름이傳하지않는水軍烈士들의英靈이시어忠武公李先生의榮譽는모두휘하영령들의영예이며英靈들의護國精神도바로우리後生들이계승하고있으며자랑으로여겨새겨놓고있습니다오늘우리後生들은모진苦難克復하고세계에우뚝하며날로번영전진하고있사오나한편으로倭의후예들중侵略근성못버리고反省없이분쟁홱책여전하여근심이오니英靈께서도어찌분노하지않으시오리까부디높이해와별이되시어앞길을밝혀주시고모진바람벼락으로倭놈의간사함을꾸짖고妖氣를뽑아내시어나라를평안하게하여주시옵소서壬辰亂八周甲이六十年후이온데내일처럼바로닥치는듯돌아가신지어제같은듯기리는마음그지없사오매精誠다하여공경히國家祭享의술잔을올리오니부디깊이살피시어 尙饗하시옵소서

 

음복례를하고

례관이 "行望燎禮"를 창하니, 당하집례는 "망료례를 행하시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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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제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분축을 했다.

 

이어 정현태 남해군수를 필두로

 

(사)임진란정신문화선양회 류한성 수석부회장과 유완식 이사

 

후손들도 헌화를 했다.

 

헌화가 끝난 후 충무공을 예우하고 기리는 19발의 예총을 발사했다.

 

정현태남해 군수는 "이곳 바다 물결은노량해협을 지날 때는 숨을 죽인다고 하는데,우리지역에 이렇게 훌륭한 분의 유적이 있어 자랑스럽고 행복하다"고 말하고, "이 지역은 새로운 역사 박물관으로 꾸밀 계획이라"고 했다.

 

이종남 임진란정신문화선양회장은 오늘은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켜냈던 이충무공과 장병그리고 의병들의 애국애족을 정신을 기리고또 우리의 마음가짐을 반성하는 날이라며 “420년 전 나라를 위해 싸우셨던 선조들의 충절을 이어 받아 노력한다면 더욱 부강하고 더욱 화목한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치제복을 처음 입어보는데 충무공께서 순국한 단 앞에 서니 눈물이 났다고 말하는데도 감정이 목에 잠겨 말을 잊지 못했다. 

 

문중대표로 이종민 정정공파 회장은 "임진란 420주년인 7주갑을 맞이하여 공신 사제사(賜祭祀) 대상 아홉 분 중의 한 분이신 충무공 할아버지의 사제사를 위하여 경향각지에서 먼 길을 마다않고 찾아주신 내외 귀빈과 정부로부터 어려운 예산을 타내어 이렇게 임진년(60년) 마다 치제하는 사제사를 잊지 않고 봉행케 해주신 사단법인 임진란정신문화선양회의 이종남 회장님과 류한성 수석부회장님 그리고 축문을 짓고 써주신 서울대학교 박병호 명예 교수께도 감사의 말씀을 올리다"고 말했다."또한 매년 충무공 행사에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정현태 군수님과 한호식 의장님, 남해충렬사 강달호 이사장님께도 감사를 표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 자리는 충무공께서 돌아가시어 처음 모신자리로 매우 안타깝고 죄스럽지만 한편으론 나를 버려 나라를 구한 영광되고 숭고한 자리라 생각된다"고도 했다."비록 60년 마다 한 번씩 오는 행사지만 이러한 국가적 행사가 올해에 이어 8주갑인 2072년을 넘어 그 이후로도 영속될 수 있도록,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우국충정의 심정으로 멸사봉공하신 공신들의 정신문화를 전승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로 인사말을 가름했다.

 

집집례관과 사제관(치제관)의 기념촬영

 

치제관과 정현태 남해군수, 하미자 남해문화원장, 서애 후손과 종인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