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2011년도 제2차 청주 학술대회 개최 2011-11-12
2011년 11월11일(금) 오전10시 30분 청주고인쇄박물관 세미나실에서 300여 명이 모인가운데 2011년도 제2차 청주학술대회가 '中ㆍ北部地域 壬辰亂 抗爭活動의 歷史的 再照明'란 주제로 열렸다. (사)임진란정신문화선양회가 주최하고 (사)충청북도 문화유산연구회에서 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여산송씨종친회에서 후원을 했다. 


현수막이 걸린 가운데


 입구에는 여산송씨지신공파천곡종중, 여산송씨 대종회 송기태 회장, 재경밀양향우회 김현식 회장, 칠원윤씨대종회 윤윤수 회장, 서애선생기념사업회 류진 이사장, 한국원자력연구원 송철화 종손, 순천박씨 판서공 종회, 고령김씨 대종회 김기열 회장, 오송새마을 금고 송해용 이사장, 여산송씨 서울 종친회, 한국국학진흥원 김병일 원장, 순찬빅씨민양공화천당파종중 박영순 회장, 충의공정문부장군 후손대표 정태호, 청원군문화원장 배금일, 해주정씨 대종친회 정석준 회장, 순천박씨 충북종친회 박회순 회장, (사)임계영선생기념사업회 임동백 이사장 등의 화환이 답지했다. 그리고 노영민 청주지역 의원의 축전이 있었다. 


박상일 (사)충북문화유산연구회 회장의 사회로 


국민의례를 마치고 호국영령들에 묵념하고 있다.


 이어 충렬공(송상현)손으로 대회장인 송정화 이사의 개회사가 있었다. "우리 인진란정신문화선양회는 임진왜란 당시 선조들을 추모하고 그 분들의 애국 충절정신을 계승하고자 조직된 단체"라 말하고 또한 "온 몸을 바쳐 희생하며, 나라를 위해 순국하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고귀한 넋과 정신을 후대에 전승하고 기리는 자리는 대단히 숭고하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 학술대회가 뜻 깊게 이루어져 학문발전에도 이바지하는 행사가 되길 바란다."고 끝맺음 했다.



 함범덕 청주시장의 축사에서 "본인이 임진생(壬辰生)이라고 소개하고 정부의 문화와 관련한 곳에서 근무했었고 특히나 일본에서 '북관대첩비' 반환 등 문화재와 관련한 정책을 많이 했었다 했다. 청주 지역은 박춘무 선생이나 영규 대사 등이 이곳 출신이고 천공선생의; 묘소도 있다고 소개하고 고인쇄 박물관에서 학술대회를 갖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 



본회 류한성 수석부회장은 인사말에서 "공사다망한 가운데 경향각지에서 온 내외빈께 감사의 말을 하고 막대한 재정지원과 모든 제반 사항을 주선해준 여산송씨 문중과 문중을 대표한 송철화 종손과 대회장인 송정화 이사 그리고 제반업무와 진행으로 학술대회가 원만히 열리게끔 해준 (사)충북문화유산연구회 박상일 회장께도 감사의 말을 했다." 특히 "고령이시고 건강이 여의치 않으신 데도 원거리 경북 안동마을에서 왕림해주신 본회 고문이신 류영하 서애 종손께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또한 바뿐 가운데 연구를 집중하여 길이 남을 값진 원고를 집필하여 발표한 발표자들과 값진 논평을 해줄 토론자 여러분의 노고에도 감사를 표했다.


 "2010년 9월29일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사단법인 허가를 받아 10월5일 법인등록을 완료했으며, 지난해 12월10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임진란의 역사적 재조명'을 주제로 사단법인 설립기념학술대회를 개최한바 있다"고 했다. 그리고 "올해 6월1일 '의병의 날'을 맞아 대구교육청 대강당에서 '영ㆍ호남지역 임진란 의병활동의 역사적 재조명'이란 주제로 6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2011년도 제 1차 학술대회를 마쳤다"고도 했다. "오늘 11월11일 이곳 청주 고인쇄 박물관에서 2011년도 제 2차 학술대회를 개최하게 되었음을 얘기하고, "특히 작년도의 사단법인설립기념학술대회와 금년도의 제1,2차 학술대회 등의 성과물을 집대성하고 정리하여 '임진란의병사전집'(가명)이란 단행본을 2012년 봄에 간행하여 보급하고자 준비 중에 있다"고 했다. 


많은 후원회 등 각계각층의 사람이 운집한 가운데 학술발표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로 吳仁澤 부산 교육대 교수가 '忠烈公 宋象賢 敍事’의 사회문화적 성격의 주제로 "조선후기의 일반적인 송공(宋公) 이미지는 '충렬공'으로 상징되었으며, 이 이미지는 송공의 연고지와 그와 연관된 인물의 연고지를 통해서 재현되었으므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고 보았다. 이런 한 이미지의 형성과정을 살펴보면, 임란 초기와 임란 후기의 성격에 차이점을 찾을 수 있었다. "임란 초기의 이미지는 민심수습을 위한 군을 정비하는 현실적 차원에서 순절을 포상하는 차원이었다. 그러나 임란 이후의 이미지는 사우의 건립, 사액, 시호 하사 등을 통하여 정치적 충절의 성격이 강했다. 이른바 통치 전략의 역할을 담당하는 유교적 영웅화로서의 충절이미지가 생산된 것이었다."고 했다. 


 두 번째로 郭鎬濟 청양대 교수가 '壬辰倭亂期 湖西義兵의 基盤과 活躍'의 주제로 호서의병의 기반은 학술적 기반(조헌은 이지함, 성혼, 이이의 사승관계), 혈연적 기반(배천조씨, 개성김씨, 옥천전씨, 하동정씨, 선산곽씨, 충주박씨, 여주이씨, 순천박씨), 지연적 기반(옥천지역, 충주지역)으로 자세하게 나누고 호서의병의 활약은 추풍령전투, 청주지역 전투, 금산 연곤평전투, 진천전투 등을 소개하고 끝으로 "호서의병은 독자적인 의병활동보다는 다른 의병진이나 의승군, 또는 관군과의 연합작전을 위해 노력했고, 비록 연합작전을 수행할 때 관군의 지원을 크게 받은 바 없으나, 연합을 통해서 전력을 극대화하려고 했던 점이 주목된다"고 했다.


점심시간을 마치고 제2부 학술발표가 시작됐다.


 세 번째로 鄭海恩 한국학 중앙 연구원 선임연구원이 '중부지역(서울․경기도․강원도) 임진란 의병활동에 관한 연구'를 큰 주제로 '경기지역을 중심으로'를 부제로 삼아 발표했다. 임란왜란초기 경기의 적침상황을 밝히고, 경기의병의 실태, 경기의병의 특징에서 의병의 출신성분, 의병의 소속처, 의병의 활동시기로 나누어 발표했다.  맺음말에서 주목할 사항은 광범위하게 형성된 의병의 존재라고 밝히고, "경기의 지역민들은 수령이나 병마절도사 같은 국가의 공식적인 지휘관 휘하에 들어가 활약했다"고 했다. "관료 휘하에 들어간 사람들이 의병의 형태로 활동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단서는 이들을 '의병'이나 '창의군'으로 불렸다" 했다. 경기에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진 것은 의병장의 부재와 함께 경기에 근왕과 도성회복을 위해 각지에서 모여든 공식 지휘관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으로 보았다. 


 네 번째로 金炫榮 국사 편찬위원회 교육 연구관이 '임진왜란 초기 함경도의 상황과 왜군 격퇴'에서 임란 시기 함경도 지역의 상황, 북평사 정문부 군의 구성과 활동, ⌜북관일기⌟와 함경도 관찰사 윤탁연의 동향으로 나누어 발표했다. "원래 함경도ㆍ여진 양계(兩界) 지역은 삼남(三南) 지역과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함경도는 전통적인 양반사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변경 지역에서는 여진족과 근접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가의 통제가 매우 어려운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임란 초기에 왜군이 파죽지세로 몰려오자 함경도 여러 군현에서는 지역 아전들이 자발적으로 수령이나 지휘관을 잡아서 왜군을 맞이하고 심지어는 왕자들까지 잡아서 바치는 형국이 되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金龍泰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가 '임진왜란의 의승군 활동과 그 불교사적 의미' 에 대한 주제발표에서 청허 휴정과 그의 문도와 임진왜란의 의승군 활동 그리고 의승군의불교사적 의로 나누어 발표했다. 


발표를 다 마치고 종합토론에 들어갔다.
 이헌창 고려대 교수와 한명기 명지대 교수, 이종수 동국대 불교문화원 교수, 국방부 군사 편찬 연구소 전호수 박사, 충북대학교 조영임 박사 등이 토론자로 나와 토론을 했다.



많은 질문이 오고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