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27일(일요일) 오전11시, 성남시 북정동 재실(모덕재)에서 (사)임진란정신문화선양회 이종남 회장, 청주정씨 백곡정곤수선생 정재우 회장, 성남시 세거문중협의회, 조억동 광주시장, sbs 서울방송 윤세영 회장, 해평윤씨 윤판구 회장의 화환이 진열된 가운데 (사)임진란정신문화선양회 류한성 수석부회장, 정만용 감사, 송정화 이사 등과 많은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오음윤두수선생의 7주갑 국가제향을 사제관 조억동 광주시장이 대한민국 이명박 대통령을 대신해 치제했다.
치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리고
오음(梧陰) 윤두수 [尹斗壽, 1533~1601] 선생 (1590년 종계변무의 공으로 광국공신 2등에 책록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기용되어 선조를 호종하여 2등공신에 책록, 어영대장, 우의정 ·좌의정 역임) 영정과
국가에서 내린 제례음식 단자에 따라 진설된 가운데
오음 선생 후손이며 본회 윤성로 감사의 사회로 시작되었다.
이 치제는 ∙1772년(영조 48) 1월15일 임진 3주갑 ∙1832년(순조 32 임진) 4월 1일 4주갑 ∙1892년(고종 29 임진) 5월 24일 5주갑∙1952년(이승만 정부) 5월 25일 6주갑으로 이어져 한 주갑(周甲,60년)도 거르지 않고 역대 왕들로부터 이승만 정부까지 봉행해왔다. [단제사] : 忠烈公) 송상현(宋象賢)·문열공(文烈公) 조헌(趙憲)·충렬공 고경명(高敬命)·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순절한 곳에 단을 세워 각각 봉행. [사제사] : 문충공(文忠公) 이항복(李恒福)·문정공(文靖公) 윤두수(尹斗壽)·충익공(忠翼公) 정곤수(鄭崑壽)·문충공 유성룡(柳成龍)·충장공(忠壯公) 권율(權慄)의 가묘(家廟)에서 봉행해 온 것을 60년만인 올해 7주갑에 봉행한 것이다.
문렬
조선왕릉제례보존회 이상훈 차장의 창홀로 치제의식이 진행됐다.
국조오례의에 따라 제례복식을 갖추어 입고 청사초롱등을 앞세우고 국가에서 내린 치제문을 받들고 사당으로 들어오고 있다.
많은 참례객들이 좌정하고
헌관과 집례관들이 도렬해 있다.
독(櫝)을 열고 비단으로 만든 도(韜)를 벗겨 신주를 모시고 있다.
사제관(임금을 대신해 제를 올리던 관리) 조억동 광주시장이 삼족배를 올리고 있다.
이어 축관이 치제축문을 읽고 있다.
축문을 창하는 동안 밖에서는 고개를 숙여 공을 기리고 있다.
오음선생의 후손인 sbs서울방송 윤세영 회장이 아헌을 했다.
종헌관으로 역시 후손인 윤금영 해평윤씨지족암공파 종중 도유사가 했다.
사제관이 음복예를 한 다음
갑자기 소낙비 내리는 중에
분축을 한다음 예필(禮畢)했다.
“오늘은 싱그러운 5월의 황금연휴에다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임진란 420주년인 7주갑 공신 사제사 대상 아홉 분 중의 한분이신 우리 문중의 현조이시며 임진란 공신 오음공 7주갑 사제사를 위하여 경향각지에서 먼 길을 마다 않고 찾아주신 대 대하여 내 외빈 여러분께 우선 고맙다”고 인사를 한 후 사제사 조억동 광주시장과 축문을 찬한 서울대학교 박병호 명예 교수 그리고 이러한 숭고한 전통적 제례의 맥을 찾아 주고 참석한 류한성 사단법인 임진란 정신문화선양회 수석부회장 등 임원진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또한 “이번 임진란7주갑 단·사제사를 맞이하면서 생각나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임진년 하면 우선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단어로서 420년 전의 7년간의 전쟁은 혹독하고도 잊을 수 없는 치욕의 민족적 비극이었다는 것을 일제 강점 36년의 나라를 빼앗겼던 체험의 세월과 비교 연상되어 미루어 알 수 있다”고 말하고 "그러므로 현세보다도 더 열악했던 임진란시는 얼마나 어려웠을까 생각하면 올해로 7주갑 단·사제사를 맞게 되는 아홉 공신들의 피눈물 나는 위국헌신에 삼가 숙연한 마음을 갖게 된다”고 했다. “비록 60년 주기로 봉행되지만 후대에도 계속되어야 됨은 물론 우리 모두는 공경하는 마음으로 훌륭하신 공신들의 정신을 이어 받아 현하 혼란스런 국가관을 확립하는 사표로 삼아야 한다”고 임란공신 오음공7주갑 사제사 윤금영 봉행위원장은 인사 말씀으로 갈음했다.
헌관과 제관들의 기념 촬영
후손들도
본회 임원진과 제봉 고경명선생 후손들도
본회 임원진도 기념촬영했다.
에필로그
유럽에 온 듯한 가천대역을 나와
안내를 받아
방명을 하고
명함을 주고 받고
수인사를 나누고
한편에선 제복으로 갈아 입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공을 기렸다.
다음 2072년 8주갑에 참석할 꼬마 후손들도 여럿 보이고
갑자기 소낙비 내려 손님들 어데로 갔나 했더니
각 추녀와 창너머에 계시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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