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420년 전 격전지 울산, 그날의 歷史 잊었나 2012-08-04
2012년 7월24일 울산일보 16면에 본회 서진길 이사 (前 울산임란숭모회 충의사 이사장 前 울산문화원 원장)의 굴이 전면에 걸쳐 실렸다.

  



420년 전 격전지 울산그날의 歷史 잊었나 
임진왜란 7주갑 맞은 울산
60년마다 돌아오는 임진년에 그날을 되새기다 
[16]의 기사보기 2012년 07월 24일 (



▲ ­임진왜란 의사를 추모하고 있는 울산 충의사(忠義祠제향 장면.

  일본군 20만 대병력 부산진 침입…울산의사들 경주 읍성 탈환전 등 출전 왜군 맞서 방어선 구축…태화강 구강회맹’ 다지고 서생포회담 대표파견 임란은 국제전쟁…동아시아 정치·경제·사회기반 송두리째 바꾼 대사건.
그 속엔 목숨바쳐 나라 구한 239명 지역 의사들 충의정신 자리하고 있어 420년 지난 오늘날 국제 정세·나라 안팎 위태로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 울산선 임진왜란 7주갑 뜻조차 몰라…선조 호국정신 기리는 일에 관심을


서진길 前 울산임란숭모회 충의사 이사장 前 울산문화원 원장 

◆임진왜란과 울산의사(義士)들의 활약

우리 울산은 단군이래 나름대로 살기 좋은 고장이었으나 전후에 일본의 침략으로 민생의 도탄에 빠지고 국토의 동남해안에 위치한 중요 요충지로써 선조(宣祖초기에는 병영에 경상좌병사를 주둔시키고 국방을 강화하였다또한 무역 통상적인 차원에서 염포를 개항하여 평화적인 교역을 하였던 곳이다.
조선 왕조는 유학을 바탕으로 학문과 예의 그리고 충효(忠孝)를 존중하여 다른 나라와 큰 마찰없이 평화가 유지되었다그러나 일본은 선조25(서기1592) 414일 20만의 대병력으로 우리민족에게는 가장 치욕적인 임진왜란을 일으켜 쳐들어 왔다.

일본군이 갑자기 부산진을 침입하자 경상좌병사 이각(李珏)은 울산군수 이언성(李彦誠)과 함께 동래성으로 출전하였으나 부산진성과 동래성이 무너지니 왜군의 세력에 놀라 퇴각하고 말았다.최전선에 위치한 울산 병영성에는 군사진영 체계에 따라 영남의 13개 고을의 관군이 모였으나 좌병사가 탈출하는 바람에 힘없이 함락되고 말했다.
 
왜적은 경주를 거쳐 북진하고 병영성을 점령한 적들이 약탈과 살상등 만행을 저지르자 울산의 의사들은 충의일념으로 기박산성에서 창의 거병하여 의병 항쟁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의병들은 경주의병과 함께 병영성을 급습하여 왜적들의 간담을 서늘케하였고 이어 전략요새인 개운포사자평 등 여러곳에서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왜적을 크게 격파하였으며 경주 읍성 탈환전 등 구국 활동을 전개하였다.

조정에서는 경상좌병사 박진(朴晉)과 울산군수 김태허(金太虛)를 임명하고 서면장(西面將)에 박홍춘(朴弘春남면장(南面將)에 전응춘(全應春주사장(舟師將)에 서인충(徐仁忠)을 각각 내세워 울산의병의 지휘체계를 확립하였다.  
▲ 지난 6월 2일 안동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임진왜란 7주갑 기념 문화·학술대제전에서 임진왜란 7년 동안 나라를 위해 전공을 세운 류성룡이순신 등 108명 장군과 공로자들의 깃발이 행사장에 입장하고 있다.

  선조26년 4월 한성화담으로 서울에서 쫓겨난 왜적은 서생성을 비롯한 남해안에 13개 성을 쌓는 한편 울산지역 병력을 증강시켰다그래서 국지전이 더욱 치열하자 울산 의병진은 진지를 일단 경주로 옮겨 안동지역까지 방어선을 구축항전을 계속했다.
또한 울산의병은 서생성에 진을 치고 있던 왜적을 태화강에서 격퇴하고 울산성까지 되찾는 전과를 올렸다울산경주언양장기영일영천 등의 의병장 67명이 모여 태화강 [구강회맹]을 다졌다이들은 경주 「문천회맹」 대구 「팔공회맹」 창령 「화왕산회맹」에도 적극 참여하였고 서생포회담에도 우리대표를 파견하였다.
강화화담이 결렬되자 「정유재란」을 일으킨 왜장 「가토오 기요마사」 는 울산 도산(지금의 학성공원)에 철옹성을 쌓고 항거하였다울산의 의병들은 조명연합군과 함께 왜적의 최후 보루인 도산성을 포위하니 물을 공급받지 못한 왜적들이 말오줌을 마시며 연명하는 등 극한 상황에 몰리게 된다.
  ◆임진왜란 7주갑을 맞아
420년 전 일본의 침략으로 시작된 국제전쟁인 임진왜란은 우리나라 역사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을 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사회기반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이런 임진왜란 420주년을 맞이하며 사단법인 임진란 정신문화선양회(회장 이동남)는 우리민족의 비극이었던 임진왜란에 대한 체계화된 통합적이고 국제적인 새로운 시각에서 「문화학술대제전」의 기본틀 마련에 나섰다정부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지난 62일 경상북도 안동야외공연장에서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애국시민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임진란 7주갑 기념 문화학술대제전(文化學術大祭典)이 성대히 거행되었다.
  또한 629일에는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국내외 임란관련 역사 학자들의 국제전쟁 임란에 대한 학술발표회가 동시통역을 통해 거행됨으로써 참석자들로부터 박수와 함께 많은 호응을 받았다.
1592년부터1599년까지 7년 동안의 임진란이 끝난 이후 정부에서는 60년 마다 국가 차원에서 임란영웅들께 제사를 지내왔다.특히 19525월에는 6.25전쟁 중에도 이승만 대통령 주제로 신익희 국회의장이 임란6주갑 기념축사와 함께 「존무초」 주한미 대사와 「왕등웬」 대만대사 및 외교사절이 참석한 가운데 임진란 6주갑 기념행사를 서울 충무로 광장에서 애국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거행했다우리민족사에 임진왜란이야말로 잊어서는 안 될 역사적 대사건이며 임란7주갑을 맞이한 오늘날의 국제정세나 나라사정을 볼 때 나라의 위태로움은 항상 진행 중임을 느낄 수 있다.

마침내 왜적은 패퇴하고 1599년 임란7년 전쟁이 막을 내렸다울산의 의사들은 무수히 전사하고 부상을 당하면서 충의정신으로 혼연 일체가 되어 용감하게 싸워 이겼다이 같은 전공을 놓고 조정은 어진회의에서 수차례 치하했으며 명나라 장군 「마귀」도 이들 의사의 충의사상을 기리기 위해 서생포성에 창포당을 지었다.
 선조는 어사 이상신(李尙信)을 울산으로 보내 정황을 조사보고케 하면서 울산의사 들이 아홉 번 죽었다가 한번 산 것 같이 우리나라도 망했다가 다시 살아나 강토를 보존하게 되었다이것은 의사 여러분이 일찍이 의기를 떨쳐 앞장서지 않았다면 나라의 남쪽을 잃은 지 오래였으리라고 하였다.
  그리고 관찰사 한준겸을 보내 선유기사를 반포케하고 울산의사 165인에게 술과 포목 등을 특별히 하사하고 노고를 치하하였다결국 울산 의사들의 이러한 공로는 높이 평가되어 울산은 도후부로 승격되었다.
임진왜란이 끝난지 420년이 지난 오늘 울산 임란의사를 모신 충의사(忠義祠)에서는 자랑스러운 우리 의사들의 역사적 업적을 자손만대 이어지도록 하고 있으며 시민들은 충의(忠義)를 본받아 국가발전과 향토를 위해 이바지해야할 것으로 믿는다.


  
▲ 충의사 전경 모습.

  ◆울산의 임란의사 충의사(忠義祠)에 봉안
울산시는 임지왜란 때 왜적이 쳐들어 온 길목인 울산고을의 의사들이 창의하여 이 고장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바쳐 용감하게 싸워 이긴 의사(239)들의 위패를 모시고 고귀한 충의정신을 추모하고 정성으로 제향을 하고 있다.
  선조 25(1592) 414일 왜적대군이 부산포를 침범하여 부산진성과 동래성이 함락되고 이 전쟁에 부산첨사 정발장군과 송상현 동래부사가 전사하였다이어서 관군들은 겁을 먹고 도망하니 우리 울산도 점령되었다왜적의 만행에 비분강개한 울산지방의 의사들은 분연히 일어나 신라시대 옛성인 기박산성에서 1592년 423일 결진하여 편대하였고 이어 경주지방 의병들과 신흥사 승병도 합류나라를 지킬 것을 맹서하였다.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병영성을 점령하였으며 주둔하고 있는 왜적을 기습으로 제압하고 선조31년 1118일 최후로 도산성(학성공원)에서 왜적을 격퇴할 때까지 수백번 싸워 이긴 전공을 높이 사 조정에서는 울산군을 울산도호부로 승격시키는 은전을 내렸다아울러 울산의사들의 전공을 치하하는 선조왕조신록과 선무원종 공신록번 및 교지 등을 통해 울산의사들의 충의사상을 높이 평가하였다.
  이에 울산광역시는 선조들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77월 사당건립에 착수하여 2000년 6월에 충의사(忠義祠)당 외 9등을 완공하여 울산임란의사숭모회에 위탁관리토록 하였다.
현재 사당에는 임란 당시 울산지역 전투에 전공을 세운 의사 239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으며 특히 수많은 무명의사들을 위하여 신위를 함께 모시고 있다울산시는 2000년부터 매년 425일과 1015일 봄 가을 온시민의 정성으로 임란의사께 제향을 올리고 있다또한 전시관을 만들어 임진왜란 7년 동안에 있었던 모든 유물과 전적지들을 전시하고 있어 우리 울산의 나라사랑 정신교육을 하고 있다.
  울산임란의사 숭모회는 울산광역시의 지원으로 울산의 역사적 정체성을 바로잡기 위하여 2005년에 「울산의 충의정신」 책자를 간행하였으며 울산교육청도 나서 초등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충의 정신」을 다시 정리해 연간 5만 여권의 교육용 책자를 발간해 울산충의정신 교육에 활용하고 있다이 같은 각종사업을 통해 선조들의 호국정신을 받들어 모시는 일에 노력하고 있으나 무엇보다 애향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이 필요할 때다.
  지금 전국적인 관심속에 임진왜란 7주갑을 위해 고을마다 임란역사를 재조명하고 있으나 부끄럽께도 임란 최대의 격전지였던 우리 울산은 420년 7주갑의 뜻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앞으로 다가올 60년 후 8주갑(2072때를 기약해야 될까그러나 너무나 아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