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임진란 7주갑 기념 제4차국제학술대회 개최 | 2012-12-10 |
2012년 임진란 7주갑 기념 제4차국제학술대회 개최 알림 현수막이 걸리고 평양성 전투도도 내 걸리고 입추의 여지없이 만석한 가운데 국민의례를 마치고 류한성 임진란 7주갑기념 문화・학술대제전 집행위원장은 이종남 회장의 개회사 대독에서 "사단법인 임진란정신문화선양회는 임진전쟁 발발 7주갑을 맞이하여 임진전쟁 7주갑 기념 문화・학술 대제전의 일환으로 4차례에 걸쳐 국내외의 학자들과 함께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여 임진전쟁의 역사적 의미를 다각도로 조명해 보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하고,."지난 6월 29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개최한 제1차 국제학술대회에서는 임진전쟁 당시의 정치・외교문제를 주제로 하여 성공적으로 대회를 마쳤으며, 8월 25일에는 전남도립대학교 대강당에서 제2차 국제학술대회를 임진전쟁 당시의 사회・문화를 주제로 성황리에 마무리했다"고 했다. "또한 10월 13일에는 부산대학교 학생회관 대강당에서 경제와 군사 문제를 주제로 선정하여 성공적으로 제3차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였으며, 오늘 이곳 대구광역시 교육청 대강당에서 임진란 7주갑 기념 문화・학술 대제전의 대미를 장식할 제4차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번 제4차 국제학술대회에서는 임진전쟁의 의미를 되새기고 교훈을 얻기 위하여 ‘임진란 연구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선정하였으며, 돌이켜 보면 작년 6월1일 ‘제1회 의병의 날’에 즈음하여 이곳 대강당에서 본회 주최 ‘영・호남 의병활동’에 관한 학술대회를 영남유교진흥원장이신 노진환 대회장님의 주도로 전 국민의 관심 속에서 성대하게 개최하였다"고 강조했다. "이를 시발점으로 하여 거국적이고 거족적인 임진란 7주갑 기념 문화・학술 대제전의 일환인 국제학술대회를 전국을 순회하면서 개최하고서 문화・학술 대제전의 마지막 행사가 된 제4차 국제학술대회를 이곳에서 마무리하게 되어 그 역사적 의의가 더욱 크다"고 강조했다. "제4차에 걸쳐 개최한 국제학술대회의 성과물과 그간 학계에서 논의의 중심이 되었던 임진란 관계 논문들을 총정리 하여 <임진란 연구총서>를 간행하려고 준비하고 있으며, 또한 본회가 진행하고 있는 또 다른 역점사업이 <임진란 위훈록> 발간"이라고 밝혔다. "임란시 공훈이 다대하시어 추대되신 공신님들의 위훈들을 총정리한 서책 <임진란 위훈록> 간행을 준비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간행된 선례가 없어서 여러 가지의 애로가 있습니다만 본 법인이 당연히 수행해야 할 사업으로 의견이 일치되어 계획을 세워서 원고를 각 후원회에 청탁하여 수압 중에 있다"고 밝히고 "많은 지도편달과 협조를 부탁"했다. "그 이외에 임진란7주갑 문화・학술대제전 백서와 화보의 발간・임진란관련 영상물 제작・배포・임진란 관련 문헌목록 조사・연구 발간 등의 사업들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원히 보존되고 영속될 가치가 있는 사업이라고 평가되어 수립된 계획에 따라 임진란 7주갑 문화・학술대제전을 성실하게 전개하여 내실이 있는 결과물을 제공하는 것만이 국가와 사회의 성원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개회사를 했다. 우동기 대구시 교육감은 환영사에서 “원근거리에서 많은 분들이 불편함에도 왕림하여주신 후원회 여러분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또한 국내외 석학들과 뜻 깊은 일을 하는 사단법인 임진란정신문화선양회의 류한성 추진위원장과 이를 돕는 노진환 원장을 비롯한 분들께도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그리고 “고통과 참담함을 안겨주었던 임진란의 7주갑을 맞아 국제학술대회를 저희 교육청 대강당에서 개최함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도 했다. “슬기롭게 극복한 선조들의 정신을 오늘에 되새겨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미래로 나아가는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韓明基 明知大 史學科 敎授는 '壬辰亂 再論'에 대해서 基調發表했다. 여기에서 "한국전쟁이 아직 진행 중이던 1952년 5월, 서울의 충무로에서는 ‘壬辰亂六周甲記念國難克服市民大會’가 열렸다. 식장에는 “상기하자 壬辰亂 극복하자 멸공통일”, “忠武精神 받들어 이룩하자 국토통일” 등의 슬로건이 내걸렸다. 현실의 전쟁이 아직 진행 중임에도 임진란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다시 상기되었다. 조선시대에도 임진란은 周甲이 돌아올 때마다 추념되고 기억되었다. 왜 그랬을까? "묻고는 여러 예를 들어 설명했다. 끝으로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弱體性 극복의 절실함'에서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복배수적(腹背受敵)’의 위치에 있으며,이는 ‘안과 밖 양쪽 모두로부터 적이 밀려오는 형세’라는 말이라고 설명하고,. "과거 500년 동안 한반도 주변에서 기존 패권국과 신흥 강국 사이에 힘의 교체가 일어날 때 한반도는 어김없이 전쟁터가 되었던 전철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결국420년 전 한반도는 기존 패권국 명과 신흥 강국 일본이 충돌하던 대결의 장이었다"했다. "지금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전재한뒤, " ‘G2 시대’를 운운하는 와중에 한반도는 여전히 대륙 블록과 해양 불록의 충돌의 장으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으며, "조총에 활로 맞서려다 피를 뿌려야 했던 임진왜란의 ‘전철’을 상기할 때 두 가지 과제의 해결이 절실한데, "하나는 ‘스스로 위성을 띄워 올릴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하여 전반적인 국가의 실력을 키우는 것, 또 하나는 역사의 교훈을 성찰하여 평화를 지킬 수 있는 知力과 지혜를 다지는 것이 그것이라고" 했다. 또한 "무엇보다 한반도 의 역량이 中・日에 비해 너무 약하면 한반도 자체가 불안할 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평화가 위협을 받게 되며, 다가오는 격동기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도 실력을 키우고 지력을 다지는 일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第1主題로 '壬辰倭亂 海戰에 對한 日本의 記憶'로 - 漆川梁 海戰 關聯 記事의 檢討를 中心으로 -를 부주제로 金時德 高麗大 日文學科 敎授가 發表했다. 이 발표에서는 임진왜란 7년간 발생한 여러 차례의 해전을 근세 일본 문헌에서 어떻게 기록하고 계승했는지 검토하고, 일본 문헌에서는 거제도를 가리키는 “가라시마(唐島)”라는 이름의 지역에서 일어난 해전과 일본 수군 장수인 가토 요시아키의 활약이 공통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이 '가라시마 해전'은 1597년 7월 15-6일에 있었던 칠천량 해전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임진왜란 직후에 성립된 일본측의 여러 문헌은 이 해전을 각기 조금씩 다른 식으로 기록하였고, 17세기 후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