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제2차 대구학술대회 개최 성료 2015-10-18
 



2015
1010(오전11대구교육청 대강당에서 풍산그룹 회장 류진안강노씨대종회장 노진환청도5의사 회장 이승헌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장 도건우해주정씨대종회장 정두섭한음이덕형선생기념사업회 회장 이명환칠곡향교 전교 박성규민절공백암김륵선생후원회성주도씨용호문중문경공류운룡선생후원회문충공류선룡선생후원회충무공이순신장군후원회청주정씨백곡정곤수선생후원회 정만용충렬공천곡송상현선생후원회 송정화제봉고경명선생후원회무의공박의장선생후원회 회장 박동수목사공박홍장장군 13대주손 박신일사단법인 학봉선생기념사업회전의이씨예산공문중 하목정달성서씨낙재공문중인천채씨투암공문중동래정씨임하공문중, ()한국차인연합회회장/대한민국헌정회 홍보편찬위원장 박권흠망조당공서인충장군후원회 회장서진길봉산 회장류한익남한공손응현의사후원회경주이씨대구경북화수회 회장 이종우,단양우씨열락당문중일직손씨문탄공파종중안정나씨묵현공문중능성구씨무태문중사단법인 임란의병한천승첩기념사업회,인천이씨태암공파문중충의공권응수장군추모회칠원윤씨대종회장 윤종진칠원윤씨헌민공중호윤탁연선생후손문중문화류씨귀정공류사온선생후원회사단법인 임란호국영남충의단보존회 이사장곽동수, ()박약회대구광역시 지회장조국래수서박선장선생기념사업회순천박씨충정공파종친회무민공황진기념사업회오음윤두수선생후원회장 윤금영영천의병대장정대임장군후원회의 화환이 진열되고 후원회 회원 56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학술대회가 열렸다.


각 후원회의 


화환이 답지하고


후원회의 회원들이 입추의 여지 없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를 마친 다음



류한성 회장의 인사말이 있었다.
"해를 거듭하면서 개최하는 학술대회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을 따듯하게 환영해주시는 이인선 경북부지사님지금은 중국에 출장 중이신 대구시민 여러분과 재정지원 등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고, 지금은 중국에 출장 중이신  권영진 시장님 각계의 기관장 그리고 귀빈 여러분 연 4회에 걸쳐 장소 및 각종편의를 제공해주신 우동기 교육감님을 대리한 김영탁 교육국장님과 관계자 여러분과 사단법인 임진란정신문화선양회회원 여러분자리를 함께하시어 임진란 연구의 신기원을 수립하는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해 주신데 대하여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社團法人 壬辰亂精神文化宣揚會는 2012년도 壬辰年에 거행한 壬辰戰爭 7周甲記念 文化學術 大祭典에서 4에 걸쳐 國際學術大會를 개최하였습니다.
本會는 이 學術大會에서 거두어드린 結果物과 과거에 쌓아올린 연구 축적물을 함께 묶어서 4권 1질의 壬辰亂硏究叢書를 발행하여 배포했습니다.
이 學術大會에서 壬辰亂史에 대해 총론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2014년부터는 壬辰亂史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國內의 여러 地域들을 선정하여 학술적으로 조명하여 전체의 壬辰亂史 내지 韓國史를 올바르게 기록함으로써 임진란사 연구의 정통성을 확립시키고자 매진하고 있습니다.
本會는 그 첫 번째 연구대상지역으로 大邱地域을 선정하여 2014년 10월 31일 大邱地域의 壬辰亂史硏究라는 大主題로 學術大會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연이어 永川地域을 두 번째 연구대상지역으로 선정하여 2015년 2월 12일 永川地域의 壬辰亂史硏究라는 大主題를 성황리에 學術大會를 개최 하고서 다시금 이곳 대구광역시에서 2차 大邱地域의 壬辰亂史硏究라는 大主題로 세 번째 학술대회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본회는 2011년 61일 제1회 의병의 날에 의병의 날이 국가지정기념일로 제정된 것을 기념하여 이곳 대구교육청 대강당에서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의 재정지원으로 임진 영호남 의병활동 연구라는 대주제로 2012년 거행한 임진란 전쟁 7주갑기념 문화학술대제전의 전야제의 성격을 지닌 전국 규모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2012년 12월 7일 본회는 역시 이곳 대구시 교육청 대강당에서 임진란 전쟁 7주갑기념 문화학술대제전의 중핵이 되는 4회에 걸쳐 개최한 국제학술대회의 대미를 장식하는 임진란 연구의 현재와 미래라는 대주제로 제전을 마무리하는 역사적 의의가 아주 큰 국가행사를 개최하였습니다.
2014년 1031일 역시 이곳 교육청 대강당에서 大邱地域의 壬辰亂史 硏究라는 大主題로 학술대회를 거점별 임진란사 연구의 시발점이 되며 임진란 연구의 구심점이 되는 역사적이 첫 걸음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작년과 금년 2개년에 걸쳐 이룩한 학술대회 성과물을 정리하여 가제 대구지역 임진란사』 라는 단행본을 간행하여 대구광역시의 문화자산으로 길이 보존하고자 합니다많은 성원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대구광역시에서 개최한 거점별 학술대회가 시발점이 되어 금년 222일 영천시 청소년수련관에서 영천지역의 임진란사 연구라는 대주제로 학술대회를 하였으며, 116(경주시에서 경주지역의 임진란사 연구라는 대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할 예정이고 나아가 129(상주시에서 상주지역의 임진란사 연구라는 대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내년 2016년에는 구미시문경시봉화군성주군청도군울산광역시 등에서 학술대회 개최를 개최하기 위하여 준비를 서두르고 있습니다.이렇게 거점별로 개최한 임진란사 연구의 성과물들을 체계적종합적으로 정리하면 한국의 임란사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의 임란사를 올곧게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올바른 한국의 임란사를 집대성 하는 것이야말로 본회에 주어진 본연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국제사회의 제반 양상은 국제전 임진전쟁 당시와 대동소이하다고 생각됩니다임진란사를 올바르게 체계적으로 연구함으로써 많은 시사점과 값진 교훈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본 학술대회에서 주제논문을 발표하시고 토론해주실 학자님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열정에 깊이 감사드립니다더욱이 네 번에 걸쳐 장소와 편의를 제공해주신 대구광역시 우동기 교육감님과 관계자 여러분의 노고와 협조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공사다망하심에도 불구하고 매번 경향각지에서 왕림하시어 자리를 빛내주신 사단법인 임진란정신문화선양회 단체회원 여러분과 내외빈 여러분께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인선 경북도부지사의 환영사가 있었다.
"먼저 대구 지역의 임진란사 연구 학술대회를 축하"드리며 "오늘은 아마 행사가 너무 많다 보니까 대구 시장님은 지금 해외 나가 계시고 우동기 교육감님은 체전에 가시고 김관용 지사님은 실크로드 폐막입니다오늘 지금 경주에 가 계십니다그런 관계로 제가 오늘 축사를 하게 되어 대외적으로는 무한한 영광이라"고 했다.

 

"저는 경제부지사를 하다 보니까 중앙부처에 가서 예산 따오고 국가기관에도 젊은이들 일자리 만드는 일에 관여를 하는 관계로 어르신들 행사에 자주 인사를 못 드려 이 자리를 빌려 죄송한 마음입니다제가 경북에 부지사로 정무 부지사로 4년 전에 건너가서 정무부지사를 3년하고 경제부지사를 1년하고 이제 4년이 됐습니다마는 특히 이런 역사적인 문제는 김관용 지사님이 주체적으로 하셨기 때문에 저희 부지사들은 행사에 거의 가지를 않습니다저는 이 자리에서 대신 말씀 드립니다특히 우리 경상북도 대구는 예전부터 어르신들이 잘 아시다시피 화랑정신선비정신호국정신새마을정신 이라는 우리나라를 일으킨 4대정신의 본산지가 경북이고 대구입니다지금 칠곡에는 낙동강 전통문화 축전이 지금 열리고 있습니다그래서 여러 가지로 역사적인 사실이 숨어있는 경북이고 대구입니다마는 점점점 바빠지는 관계로 역사를 저희들이 과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그렇지만 어르신들께서 꿋꿋이 임진란으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역사적인 일을 해주시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사실 잘 모르는 것 같지만 얼마 전 북한의 목함 지뢰사건이 일어나서 다리를 절단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우리 젊은이들이 전역을 연기하고 나라를 지키겠다고 한 그런 정신은 아마 여기계신 어르신들이 계속 역사적인 정신을 강조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한고" 했다. 
"이런 행사는 우리 류한성 회장님이 이끌고 계시고 오늘 특히나 발표를 해주시고 토론을 해주실 우리지역의 역사를 전공하신 교수님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임진란이 일어난 지가 420여년 지났지만 저희들이 아직 사료조사 효과가 드러나지 않습니다.거점으로 여러분들께서 대구문경성주할 것 없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임진란의 사료조사가 끝이 나면 아마 우리나라가 위기극복을 하는 사례라서 아주 중요하게 본다"고 했다.
"여러분들께서 ,어르신들께서 좀 더 힘들지만 연구해 주시고 힘을 모아 주시기를 바랍니다프랑스의 작가는 역사를 아는 사람만이 미래를 내다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역사를 혼자 하는 게 아니고 여기계신 어르신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서 가는 정신이 역사라고 생각합니다역사는 대물림을 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DNA라고 표현을 합니다그래서 어르신들이 하시는 수고가 우리 젊은 사람들 마음에 DNA로 남아서 저희들은 새로운 학문을 만들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새로운 경제도약을 하는데 힘을 쓰도록 하겠습니다다시 한 번 감사드리면서 여기계신 여러분들 더욱 건강 하시고 건승 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대구광역시 권영진 시장은 축저늘 보내왔다.

 

대구교육청 김영탁교육귝장이 대독하고 있다.
인사말씀 올리기 전에 우동기 교육감께서 직접 말씀 하셔야 하는데 경북 체전 때문에 참석 못하셔서 대단히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교육감님 말씀을 대독 하도록 하겠습니다.

 

안녕 하십니까깊어가는 가을입니다우리 교육청 정원 단풍잎 사이로 탐스럽게 매달린 열매들이 결실의 계절을 실감나게 합니다오늘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을 맞아 대구지역의 학술 발표 대회를 개최하게 된 점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역사를 거울삼아 민족의 앞날을 개척해 나가시는 사단법인 임진란정신문화선양회 류한성 회장님을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그리고 오늘 학술대회를 참여해 주시기 위해 참석 해주신 이인선 경상북도 부지사님께 감사드립니다임진란의 어제와 오늘그리고 내일 학술적으로 재조명하기 위한 전국 학술대회가 우리 교육청 행복관에서 열리게 된 것을 매우 뜻 깊게 생각합니다지난해 이어 조선중기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한 선현들의 임진란당시 의거 활동을 재조명하고 대구지역의 400여 년간 세거해 온 24개 문중의 일화가 의병활동을 고착화하여 국가위기 상태에서 발휘한 애국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건전한 국가관을 정립하고자 하는 노력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아울러 대구지역 임란의병의 선비정신 등 4개주제가 심도 있게 조율될 수 있도록 국내외 석학들과 이 자리를 빛내 주신 각계의 지도자내빈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우리 민족에게 고통을 준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올해 423년이 되었습니다이 시점에서 임진왜란을 슬기롭게 극복했던 원동력이 무엇 인가를 깊이 되새겨 보는 것은 매우 절실한 일입니다임진란을 극복한 수많은 선조들의 정신자세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갈 우리 청소년들과 시민들에게 국가와 민족에 대한 올바른 의식과 애국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끝으로 오늘 학술대회가 보다 높은 안목으로 임진란을 재조명할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애써주신 여러분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며 사단법인 임진란 정신문화 선양회의 큰 발전을 기원합니다.


부지사의 일정 관계로 기념촬영을 미리했다.


이어서 학술발료로 들어 갔다.


대구지역 임란 의병의 성격과 선비정신에 대한 주제로 경북대학교 우인수 교수가 발표했다.
"임진왜란을 맞이하여 대구도호부 지역의 의병이 일어나게 되는 과정과 활동을 살피고 그 성격을 규명해보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주 분석의 대상이 되는 대구 지역의 의병은 대구 팔공산에서 창의한 서사원·손처눌로 대표되는 의병이다.
 대구는 일본군 침략의 주통로상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읍성을 비롯한 중심부는 일찍부터 일본군의 점령하에 놓이게 되었다.이에 따라 대구의 부민들의 상당수와 대구부사가 이끄는 관군은 관내의 팔공산으로 피신하여 목숨을 보전하는 한편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수성·하빈·해안현 등 대구 외곽의 속현지역도 일본군의 간헐적인 약탈에 노출된 채 적절한 곳을 피신처로 삼아 생활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대구지역은 부사 윤현이 관내인 팔공산 동화사에 머물면서 흩어진 군사를 모아 약 2천명의 규모를 확보하고 있었다피난민들도 이 힘에 의지하여 팔공산 주변에서 생활하고 있었다대구의 지배층인 사족들도 관에 잘 협조하며 따르는 것이 비상시의 혼란을 줄이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그러나 전황이 쉽게 호전되지 않고 장기화하면서 새로운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그 즈음 의병을 일으켜 관민이 합력하여 외적을 몰아내기를 호소하는 국왕 선조의 교지경상도초유사 김성일의 격문경상우도 지역 의병장의 격문경상도관찰사의 관문경상도안집사 김륵의 활동 소식 등이 차례로 대구에 도달하게 되었다창의의 여건이 조성되고 분위기가 무르익은 상황이었다드디어 대구의 사족들이 떨쳐 일어서게 되었다일찍 의병이 일어난 지역보다는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지역마다의 여건이나 처지가 달랐기 때문에 창의 날짜만 놓고 단순 비교할 수는 없는 면이 있다대구는 주통로상에서 침략을 혹심하게 받았을 뿐아니라 점령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지역이었고그런 속에서도 구심점이 되는 수령이 군사를 거느리고 관내에 건재해있던 상황이었음을 충분히 감안한 상태에서 이해하여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대구 의병의 창의도 기본적으로 선비정신이 밑바탕에 깔려있었다대구 의병의 격문에 군주에 대한 충성심선비의 의리지배층으로서의 책임감 등이 민족적 저항의식과 함께 잘 구현되어 나타나있다향병 약조와 향병 도목 등에 나타난 대구 의병의 특징과 성격으로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창의의 출발 단계 때부터 관민 협력체제가 비교적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점이다창의의 주동자인 서사원은 부사와 함께 논의를 통해 의병을 구성하였고부사도 의병의 훈련에 참관하여 관심과 지지를 표명하고 있었다의병의 구성에서도 군역의 대상에서 벗어나 있던 양반들과 천민을 위주로 하여 관군과의 갈등 소지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하였다그리고 대구부 전체의 의병진의 구성은 면리를 기본 단위로 하여 장과 유사를 배치함으로서 대구부 전체를 아우르는 형태를 취하였다이는 안집사 김륵이 몇몇 고을에서 시행하여 효과를 본 체제였는데대구도 이 체제를 받아들여 적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임진왜란초기 경상좌도 안집사 김륵의 활동과 평가란 주제로 정해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이 발표했다.
 "
현재 임진왜란사 연구에서 경상 좌도는 경상 우도에 비해 연구가 저조한 편이다경상 우도의 경우 곽재우김면정인홍 등을 중심으로 의병 연구가 활발한 편이며이와 함께 거의(擧義)을 이끌어내고 지원한 초유사 김성일에 대한 관심도 높다이에 비해 경상 좌도는 영천성과 경주성의 전투 그리고 좌병사 박진을 제외하고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임진왜란기 안집사 김륵에 대한 연구는 현재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김륵의 생애와 사상을 다룬 글이 한 편 있으나 연보행장묘지명을 중심으로 일생을 소개한 글이다. 본격적인 연구는 아니지만 임진왜란 초기 경상 의병에 대한 연구에서 안집사 김륵의 활동을 언급하거나초유사 김성일(金誠一)에 비견하여 안집사 김륵의 역할을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었으나 여전히 학계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왜란초기 경상좌도와 안집사의 파견에서 전쟁초기 경상좌도 지휘부의 상황과 안집사의 파견을 설명하고 왜란 초기 안집사 김륵의 활동에서 소모문 작성과 가장(假將)의 임명과 의병 지원과 일본군 격퇴 활동을 설명했다. 그리고 안집사 김륵에 대한 평가에서 김륵이 안집사로서 활동한 시기는 길다고 할 수 없지만 당시 경상 좌도의 상황을 상기한다면 전쟁 초기 경상 좌도를 말 그대로 안집(安集)’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김륵에 대한 평가에서 인상 깊은 것은 김륭(金隆, 15491593)이 김수에게 올린 글이다김륭은 1592년 8월에 김륵이 안동 부사에 임명되자 김수에게 글을 올려 김륵에게 계속 안집사의 직책을 맡게 하여 지역의 민심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건의하였다김륭은 뜻하지 않게 지금 갑자기 안동으로 내려가라고 명하니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황망하여 마치 수족이 그 두목을 잃은 듯 하고,자제들이 그 부형을 잃은 듯 합니다.”고 하였다그러면서 어린아이와 여자들까지 안집사를 잃었으니 누가 우리의 거처와 우리의 읍과 우리 도를 편안히 지켜주는 임무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면서 탄식하고 있다고 하였다.
 

 


壬辰倭亂 克服에 있어서 西厓 柳成龍의 方略에 대해서 김호종 안동대 명예교수가 발표했다.

 

"임진왜란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16세기말에 발생하여당시 조선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국제적인 전란이었다이것은 왜국 즉 일본이 일으켰으나전쟁은 우리 조선에서 치루어졌으므로피해는 왜나 명나라 보다는 우리 측이 훨씬 컸다. 7년여에 걸친 전란기간에 영의정과 도체찰사란 직책을 주로 갖고전시내각을 이끌어 갖던 사람이 바로 서애 류성룡(1542-1607)이었다본고는 힘겨운 이 전란을 극복하는데중추적 역할을 수행한 서애의 전쟁 극복 방략에 대하여 고찰했다.

 

우선 그는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생각하여그들의 마음과 생활을 안정시키고자 크게 노력하였다백성들 마음이 안정되어 나라를 생각하게 하자면무엇보다 우선 그들의 식생활이 해결되어야 하겠기에때로는 군량을 떼어서라도 그들을 굶지않게 조치했던 것이다다음으로 그는 재정확보에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국가나 개인을 막론하고 생존을 유지하자면재정 즉 경제적 뒷받침이 무엇보다 중요하였다더욱이 전란과 같은 비상시에는 재정의 확보가 보다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에서애는 이를 확보하기 위하여 盡力하였던 것이다.

 

그의 임란 극복에 있어서 핵심적인 방략의 하나는군사력 강화와 자주국방 태세의 추구였다그는 전란초기 官軍이 연전연패한 이유의 하나로軍制의 미비를 생각하여 종래의 鎭管體制를 정비하는데 힘쓰는 한편군대의 숫자를 늘리고자 束伍軍制를 실시하였다그 다음 군사훈련을 강화하고 軍紀를 확립하여精兵을 만드는데 힘을 쏟았다그리고 국가의 최고 통치자인 임금이 주체성을 갖고우리 영토 안에서 우리 군사로 하여금 적군을 물리칠 수 있도록자주국방 의식을 강조하였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임진란 이후 대구지역의 전후 복구와 사회재건을 구본욱 대구가톨릭대 교수가 발표했다.
 

 

임진왜란은 조선 중기 선조 25년에 왜적이 조선을 침략함으로 발생하였다. 대구지역의 백성들과 유림의 지도자들 역시 팔공산과 비슬산 등지로 피난을 하였다대구지역의 유림들은 창의를 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하였으나 7월 6일에 이르러서야 의병을 조직할 수 있었다
본 논고에서는 임진란 이후 대구지역의 전후 복구와 사회재건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한다며,  전후 복구과정에서 경상감영의 설치는 대구지역을 영남의 중심으로 부각되게 하였으며또 지역의 유림들에 의해 대구향교와 연경서원의 중건은 그 무엇보다 교육의 중요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그리고 이번 고찰에서 향교를 달성으로 이건하였다가 다시 교동으로 이건한 시기가 1605년이 아니라 1606년으로 기존 알려진 바와 1년의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또 서사원이 지은 祠后土文을 통하여 교동에 재건립을 할 당시 옛터에 건립한 것이 아니라 멀지 않는 거리에 새 터를 잡아 건립한 것을 알 수 있었다또 연경서원을 중건한 대구의 유림은 통강을 통하여 대구지역을 학문과 문화의 고장으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마지막으로 민생을 위하여 부사가 직접 들에 나아가 농민들을 위무하고 가뭄이 들자 기우제를 지내는 등 전란으로 인하여 피폐해진 민생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목민관의 모습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볼 수 있었다.고 밝혔다.

 


경북대 김형규 명예교수를 좌장으로 


종합토론에 들어갔다.


대구 하양에서 오신 조선생은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시와 정신세계'를 연구한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임진왜란인가 임진전쟁인가로 불리는 것이 맞는가에 대해 질문했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라 본인을 소개하고 구본욱 교수가 발표한 논문에 나오는 배설이 본인의 14조 라고 밝히면서 칠천량에서 12척을 구해 이신신장군으로 하여금 명량해전에서 승리하는데 도움이 됐다면서 임진란사에 많이 알게 됐다고 박수를 쳐주고 싶다고 했다.


경주에서 오신  남선생은 우배선 장군의 업적을 사회교육적으로  류성룡 선생의 더 발굴하여 더 선양해 나갔으면 한다고 질문의 취지를 말했다.


발표자와 토론자들의 기념촬영


참석한 이사들의 기념촬영